법(法)이라는 글자 안에는 해태가 살았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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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화문 앞에는 해태가 앉아 있습니다. 법대나 법원 상징에는 부엉이가 자주 등장합니다. 둘 다 법을 뜻하는데, 하나는 뿔 달린 짐승이고 하나는 밤에 나는 새입니다. 왜 이렇게 다를까요. 오늘은 시험 이야기를 잠시 접고 이 두 동물을 따라가 보겠습니다.

法이라는 글자를 뜯어보면

지금 쓰는 氵(물)去(가다)가 붙은 글자입니다. 그런데 이건 줄어든 모양입니다. 옛 글자는 이렇게 생겼습니다.

灋 = 氵 + 廌 + 去

가운데 끼어 있는 廌(치)가 바로 해태입니다. 한자 사전의 고전인 『설문해자』는 이 글자를 이렇게 풀었습니다.

灋, 刑也. 平之如水, 从水
廌所以觸不直者去之, 从廌去

물처럼 공평하므로 水를 따르고, 해태가 곧지 않은 자를 들이받아 없애므로 廌와 去를 따른다

글자 하나에 법의 두 조건이 다 들어 있습니다. 물처럼 평평할 것, 그리고 굽은 것을 가려내 치울 것. 공평함과 판단, 이 둘이 붙어야 법이 됩니다.

해태는 어떤 짐승인가

해태(獬豸)해치라고도 부릅니다. 이마에 뿔이 하나 있고, 옳고 그름을 알아본다고 전해집니다. 다툼이 벌어지면 잘못한 쪽을 뿔로 들이받았다는 이야기가 옛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.

그래서 해태는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붙었습니다. 조선의 사헌부는 관리들의 잘잘못을 감찰하던 기관인데, 그 관원들은 해태를 상징으로 삼았고 해치관이라는 관을 썼습니다. 오늘날에도 대검찰청과 법원이 해태를 쓰고, 서울시의 상징도 해치입니다.

여기서 중요한 건 해태가 「알아본다」는 점입니다. 증거를 모으고 심리를 거치는 게 아니라 보는 순간 안다는 것입니다. 동양의 법 상징은 이렇게 즉각적인 판단 쪽에 서 있습니다.

서양은 왜 부엉이인가

부엉이는 아테나의 새입니다.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고, 로마에서는 미네르바라 불렸습니다. 그래서 서양에서 부엉이는 오래도록 지혜를 뜻해 왔습니다.

이 새가 법과 단단히 묶인 건 헤겔 때문입니다. 그는 『법철학』 서문에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.

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.

무슨 뜻일까요. 지혜는 언제나 뒤늦게 온다는 말입니다. 한 시대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우리는 그 시대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합니다. 법도 그렇습니다. 사건이 벌어지고, 다툼이 쌓이고, 그러고 나서야 판례가 서고 법이 고쳐집니다.

그러니 서양의 상징은 정반대 자리에 서 있습니다. 해태가 보는 즉시 가려낸다면, 부엉이는 다 끝난 뒤에야 날아오릅니다.

해태는 뿔로 가려내고, 부엉이는 어둠이 와서야 날아오른다.

눈을 가린 여신, 눈을 뜬 여신

서양에는 상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. 정의의 여신입니다. 그리스에서는 디케, 로마에서는 유스티티아라 불렀고, 여기서 justice가 나왔습니다.

이 여신은 보통 세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.

  • 눈가리개 — 누구인지 보지 않겠다는 뜻. 지위도 재산도 안 본다는 약속입니다.
  • 저울 — 양쪽 주장을 달아 본다는 뜻.
  • — 판단에 그치지 않고 집행한다는 뜻.

그런데 우리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은 다릅니다. 한복을 입고 앉아 있으며, 눈을 가리지 않았고,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습니다.

해석은 갈립니다. 사정을 살펴 헤아리겠다는 뜻으로 읽기도 하고, 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. 어느 쪽이든, 같은 상징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분명합니다.

「법」이라는 말 자체는

서양 말에서도 법은 두 갈래로 갈립니다. 영어 law는 「놓아둔 것, 정해 둔 것」이라는 뜻의 옛 북유럽 말에서 왔습니다. 누군가 정했으니 지켜라에 가깝습니다.

반면 라틴어 ius에서 나온 말들 — 정의(justice), 법률가(jurist) — 은 결이 다릅니다. 독일어 Recht, 프랑스어 droit도 마찬가지인데, 이 말들은 원래 「곧다, 바르다」는 뜻입니다. 그래서 이 단어들은 「법」이면서 동시에 「옳음」이고 「권리」입니다.

정리하면 이렇습니다.

바탕에 깔린 뜻
法 (灋)물처럼 공평함 + 해태가 가려냄
law정해 놓은 것
ius · Recht · droit곧은 것 = 옳음 = 권리

우리말에서도 흔적이 보입니다. 「그런 법이 어디 있어」라고 할 때의 법은 법전이 아니라 마땅한 이치를 가리킵니다. 「사람은 늙는 법이다」의 법도 그렇습니다. 정해 둔 규칙과 마땅한 이치가 한 단어 안에 같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.

그래서

공부하다 보면 법이 외울 것들의 더미처럼 느껴집니다. 조문 번호, 기간, 요건… 그런데 그 글자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이 오래 고민한 흔적이 들어 있습니다.

法에 물이 들어간 건 공평하고 싶어서였고, 해태를 넣은 건 가려낼 눈이 필요해서였습니다. 부엉이를 세운 건 우리가 늘 뒤늦게 깨닫는다는 걸 알아서였습니다.

다음에 광화문 앞을 지나가시면 해태를 한 번 보세요. 지금 외우고 있는 그 글자 안에 저 짐승이 들어 있었다는 걸 알고 보면, 조문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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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썼느냐보다 그 설명이 통했느냐. 막히는 자리를 찾으면 거기에 설명을 하나씩 더 붙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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